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2월6일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그 밤 속보가 달라졌다면…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축소한 혐의로 법정에 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옳은 걸까.
‘재판부 논리’대로 2012년 12월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 내용이 달라졌다면 대선 판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고제규 기자(unjusa@sisain.co.kr)

 

6개월간의 법정 다툼 끝에 2월6일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은폐·축소한 혐의를 받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가 선고한 판결문은 A4 용지 107쪽 분량이다.

무죄판결을 예상하지 못했던 검찰 특별수사팀 주변에서는 “자유심증주의 남용” “재판부가 무죄 결론을 내놓고 증언을 짜 맞춰 인용한 것 아니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판결”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경찰 추가 수사와 검찰 수사로 2012년 12월16일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명백한 허위임이 드러났다. 대선에 미친 영향도 적잖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로 법적 책임자는 사라졌다.

법정에 나온 증인은 현직 경찰 17명과 국정원 서울경찰청 담당 직원(연락관) 1명 등 모두 18명이다. 지난 6개월간 김용판 재판을 지상 중계한 <시사IN>은 법정에 선 증인들의 증언 가운데 재판부가 어떤 증언을 주로 인용했는지 따져보았다(기사에 나오는 작은따옴표 인용은 모두 판결문 원문이다).

재판부는 2012년 12월12일 오후 2시59분 김용판과 권은희가 통화한 사실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김 전 청장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권 과장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격려 전화’였다는 피고인(김용판)의 진술을 인용했다. 격려 전화를 하라고 제안했다는 이병하 당시 서울청 수사과장의 증언도 피고인과 일치한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반면 권 과장에게 유리했던 진술은 배척되었다. 서울 수서경찰서 소속 김성수 지능수사팀 팀장은 “‘단 한마디만 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서울청의 경고성 메시지를 (권은희에게) 전달해준 적이 있다”라고 증언했다(지난해 9월6일 3차 재판). 당시 권 과장에 대한 서울청 지휘 라인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재판부는 인용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진술을 인용한 이병하 서울청 수사과장은 검찰이 조사하는 도중에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뀐 바 있다. 지난해 6월 김용판 전 청장 기소 당시 수사팀 주변에서는 외압 때문에 기소 숫자를 줄였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검찰은 최현락·이병하·김병찬에 대해, 재판부에 낸 1월10일자 최종 의견서에서 김용판과 공모한 공동정범 관계로 보았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검찰이 공범으로까지 본 이들의 증언을 주요 논거 때마다 인용하며 김용판 전 청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요 논거 때마다 김용판 손 들어줘

검찰은 2012년 12월14일 국정원 김하영 직원이 쓴 메모장이 복구되자, 김용판 피고인 등이 ‘분석 범위 제한’ 논리를 만들어 선거 개입 글들을 수사 발표 범위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보았다. 국정원 김하영 직원이 작성한 임의제출서에 ‘지난 10월부터 3개월 동안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글에 대해서만 확인’하라는 문구에 근거해, ‘3개월’과 ‘문재인·박근혜 지지·비방 글’로 분석 범위를 의도적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분석범위 제한은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분석관들이 분석 초기부터 지식과 경험에 따라 스스로 판단한 결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분석 범위 제한’과 관련해 검찰이 공동정범으로 보았던 김병찬 당시 서울청 수사계장의 적극적인 역할을 재판부가 간과한 측면이 있다.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의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2012년 12월14일 오후 4시20분 분석 범위와 방향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장병덕 당시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장, 김보규 당시 서울청 디지털범죄수사팀장 등 실무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 회의가 분석 범위를 정하는 실무 지휘 라인의 첫 회의였다. 이때 참석자 가운데 검찰이 김용판 전 서울청장과 공동정범으로 본 김병찬 수사계장이 끼어 있었다. 김 계장은 ‘본질은 문재인 비방·박근혜 지지 글을 작성하였다는 것으로, 분석 방향 또한 그와 같은 게시글이나 댓글을 확인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라고 분석 범위 제한을 장 대장에게 처음으로 제안했다. 김병찬 계장의 제안에 수긍한 김보규 팀장은 12월14일 저녁 7시20분부터 김수미 등 분석관들과 회의를 했다. 이런 잇단 회의를 통해 김병찬→김보규 →김수미 등 분석관으로 분석 범위 제한이 전파되었지만, 재판부는 지시가 아닌 분석관 자체 판단으로 보았다. 근거는 김수미 분석관 등이 법정에서 진술한 ‘그와 같은 분석 범위 설정에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는 증언이었다.

분석 범위 제안의 최초 제안자인 김병찬 계장은 서울경찰청을 담당하는 국정원 안 아무개 직원과 2012년 12월11~16일 50여 차례나 통화하거나 문자를 한 장본인이다. 검찰은 김 계장을 국정원의 ‘메신저’로 보았다. 재판부가 인용하지 않았지만, 수서경찰서 소속 경찰은 김병찬 계장에 대한 부정적인 증언을 법정에서 했다. 당시 서울청에 파견 나간 최운영 수서경찰서 수사관은 “김병찬 계장이 압수물 분석에 대해 논의하는 걸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참 기가 막히네’라고 생각했다. 피의자(김하영) 입장을 편들어 대변하는 식으로 들려 너무 기가 막혀서 직접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라고 증언했다.

김병찬 계장과 권은희 과장의 증언이 엇갈리는 대목에서도 재판부는 김 계장의 증언에 신빙성을 두었다. 권은희 과장은 2012년 12월16일 중간수사 발표 뒤에도 서울청이 증거 분석물을 주지 않자 김병찬 계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증언했다. 권 과장은 법정에서 “(김병찬 계장의) 증거물 반환 거부 의사가 너무 명확해 내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라고 증언했다.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2012년 12월18일 오전 9시50분에 서울청에 디지털 증거분석 반환 요청 공문까지 보냈다. 하지만 김병찬 계장은 중간수사 발표 뒤 권 과장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도 2012년 12월17~18일 두 사람 사이 통화기록이 없다며 권 과장의 발언은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다. 2월7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권 과장은 “법정에 제출된 통화기록은 휴대폰 통화기록이며, 직무상 내부전화를 통해서 김 계장과 통화가 이뤄졌다”라고 반박했다.

2012년 12월14일 국정원 김하영 직원의 메모장이 복구되었다. 메모장에는 아이디·닉네임 40여 개가 담겨 있었다. 발견 직후 메모장 내용은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전달되지 않았다. 검찰은 김용판 피고인을 비롯한 최현락·이병하·김병찬의 은폐 지시 때문으로 보았다. 재판부도 피고인이 ‘수서서에 분석 상황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지시를 ‘수서서가 정보 통제되는 대상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분석 진행 상황이 수서서에 전달되면 언론 등에 보안이 취약할 수 있다’는 김용판 피고인의 진술을 인용해 달리 해석했다. ‘전달하지 말라’는 지시는 팩트이지만, 이것을 ‘은폐’가 아닌 ‘보안 지침’으로 해석한 것이다. 재판부는 나아가 분석 상황을 공유하지 못한 책임을 서울청이 아닌 수서서로 돌렸다. ‘수서서가 요청만 했다면 서울청이 수서서에 분석 진행 상황을 전달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수서경찰서가 요청한 100여 개 키워드를 4개로 줄여 분석한 것도 재판부는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은 수서경찰서가 요청한 ‘대선’ ‘단일화’ 등 관련 키워드를 제외하고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당’ 4개와 김하영 직원이 쓴 아이디 40개 등 44개로 키워드를 제한했다. 재판부는 ‘(서울청이) 키워드 숫자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은 수서서가 증거 분석 의뢰 절차나 키워드 의의를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으로 보았다.

재판부는 또 이례적으로 분석 결과 보고서에 들어간 ‘혐의사실 없음’이라는 문구도 ‘해프닝’으로 판단했다. 이 문구 때문에 장기식 경찰청 소속 분석관은 법정에서 “분석관들은 혐의 사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단어에 거부감이 들어서 처음에 서명을 거부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분석 결과 보고서에 적힌 대로 서명하라는 지시나 압력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분석관들이 진술한 점’을 들어, 혐의사실 없음 문구는 김하철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기획실장이 ‘자신의 개인적인 의사를 반영하면서 삽입한 해프닝’으로 판단해버렸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2월7일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무죄판결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신선영

 

12월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아쉬워”

재판부는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고 언급했다. ‘아이디와 닉네임을 40여 개나 확인한 이상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혀 오해를 피할 방법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16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두고 텔레비전 토론을 벌인 직후인 밤 11시에 배포된 중간수사 발표의 부제는,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박근혜·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 달지 않음’이었다.

재판부 논리대로 ‘40여 개 아이디 확인 결과 수사 확대’라는 내용이 담겨 한밤중에 속보로 나갔다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법리로 판단하지 않고 ‘아쉬움’이라고만 표현했다. 재판부로부터 허위 진술자로 지목당한 권은희 과장은 2월7일 기자회견에서 “2012년 12월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의 시기와 내용이 그 당시까지 진행 상황에 비추어 허위라고 볼 것인지에 대한 사실적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20일 검찰 특별수사팀은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 아무개 경감은 ‘무오(MooO) 데이터 회복방지기’를 실행해 업무용 컴퓨터에서 파일 2만 개를 삭제했다. 이번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2012년 12월16일 중간수사 발표가 문제가 없었는데도 박 경감은 대량으로 파일을 삭제한 셈이다. 박 경감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되었다. 박 경감에 대한 선고는 2월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판사 황승태)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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