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코미디에 실소 터진 법정

3월17일 ‘원세훈 재판’에는 중요한 증인이 나왔다.
이른바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
그 파일에는 심리전단 안보5팀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목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증인은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은지.전혜원 기자

3월17~18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트위터팀) 소속 직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해 12월9일 이 아무개 직원에 대한 증인신문 이후 검사와 변호사 쪽은 트위터 증거 능력을 두고 여러 차례 다투었다.

3월17일 증인으로 나온 김 아무개 직원은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목록이 담긴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작성한 장본인이다. 검찰은 김 직원이 쓴 네이버 메일에서 시큐리티 텍스트 첨부파일을 찾아냈다. 김 직원과 3월18일 증인으로 나온 또 다른 김 아무개 직원은 모두 피의자 신분이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유체이탈’ 증언을 이어갔다. 이틀 내내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방청석과 증인석 사이에는 차단막이 설치된 상태로.

3월17일 김 아무개 증인에 대한 검찰 신문

변 : 증인으로 나온 김 아무개 직원이 피고인 신분인지 벗어난 건지 검찰이 확인해달라.

검 : 현재 피의자로 입건된 게 맞고 아직 처분이 안 된 상태다.

검 :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취지인가?

검 : 그렇다.

이범균 판사는 김 아무개 직원에게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진술거부권을 고지했다.

검 : 증인은 안보5팀으로 전보되어 트위터 활동을 하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거나 사용해본 적이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사용한 적은 없다. 거기 와서 배우고 만들었다

검 : 증인은 검찰 3회 조사 때 이슈와 논지를 대부분 파트장(장 아무개)으로부터 말로 전달받지만, 전자우편으로도 받고, 받은 이슈 논지 등을 정리해서 이메일에 저장해둔 사실이 있으며, 가끔 전자우편으로 짧은 트윗글을 전달받은 사실도 있다고 했는데 맞나?

김 아무개 직원 : 따로 받은 건 아니다. 내가 그걸(논지) 만들어서 했다.

검 : 증인은 ‘외부 활동할 때 동일 장소를 반복 이용하지 마라. 국정원 청사 인근 카페 출입을 최소화해라. CCTV에서 먼 위치에서 작업하라. 해외 이메일 주소 사용하라. 트윗글과 아이디는 수시로 삭제 또는 폐쇄하며 매년 12월 마지막 주는 전 계정 폐쇄 후 재개설하라’는 업무 매뉴얼 자료를 받아본 적이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업무 매뉴얼은 따로 못 봤다.

검 : (심리전단 업무 매뉴얼을 보여주며) 이거 봤나?

김 아무개 직원 : 못 봤다.

검 : 증인은 kim********@naver.com 계정 사용했죠? 개인 이메일 맞죠?

김 아무개 직원 : 예.

검 : 이 네이버 메일의 ‘내게 쓴 메일함’에서 ‘신의1’이라는 제목 이메일에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비롯해 ‘4·25 지논’ 등 총 5개 파일이 있는데, 증인이 이 파일들을 작성해 첨부한 게 맞나?

김 아무개 직원 : 기억이 안 난다.

검 : 4월25일부터의 논지라는 의미에서 4·25 다음에 논지를 거꾸로 한 지논을 붙인 것 아닌가?

김 아무개 직원 :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판 : (검찰에게) 지금 증인은 모른다로 답변하고 있다. 답변이 뻔한데 차라리 의견서 형식으로 정리하는 게 어떠냐.

검 : 요약해 몇 가지만 더 묻겠다.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보면 ‘십’이라고 표시된 계정들의 닉네임을 보면 ‘십알단’ ‘좌빨들을 혐오한다 십알단’ 등인데, 십알단 활동을 알고 있어서 ‘십’이라 표시한 것 아닌가?

김 아무개 직원 : 기억 안 난다. 모른다.

김 아무개 직원에 대한 변호인 신문

변 : 검사 신문에 대부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는데, 혹시 이 사건으로 체포되고 조사받으면서 아니면 다른 개인적인 일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적 있나?(방청석 웃음)

김 아무개 직원 : (침묵 뒤)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 모르겠다. 죄송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충격을 받은 건 맞다.

변 : 기억력이 조금 떨어지나?

김 아무개 직원 : 예(방청석 웃음).

판 : 방청석에서 자꾸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차단막이 있어 안 보이니 감정이 증폭되는지 모르지만 매우 적절치 않다. 조심해주시길 부탁드린다(이날 방청석을 차지한 이들은 대부분 취재기자였다).

변 : <동아일보> 기사에 보면, 검찰특수팀이 지난해 10월17일 오전 6시50분께 가스공사 직원을 사칭해 증인 집에 들어갔고, (증인이) 안방 문을 잠그고 화장실로 피신하자 문을 걷어차 구멍을 뚫었으며, 영장 없이 하드디스크와 휴대전화를 강제 압수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언론에 이야기한 것 맞나.

김 아무개 직원 : 나는 이 얘기는 안 했는데, 그 내용이….

변 : 다 맞나. 가스공사 직원 사칭했고?

김 아무개 직원 : 그렇다. 문이 부서졌다.

검 :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 집행할 때 증인의 처는 증인이 집에 없다고 했고, 증인은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숨었죠?

김 아무개 직원 : 피신했다.

검 : 증인이 숨어 있었고, 문을 열지 않아서 문 열고 나오지 않으면 부수겠다고 얘기하는 걸 다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알고 있죠? 그때 현장에서 우리 수사관이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기억 안 나나? 증인이 나온 다음에도 카메라로 다 찍는다고 고지했는데 기억나나, 안 나나?

김 아무개 직원 : 기억 안 나는데….

검 :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제시하면서 직접 읽어주기도 했는데 기억나나?

김 아무개 직원 : 읽어주신 것 같은데….

검 : 방금 변호인 신문 때 영장 본 적 없다고 왜 그랬죠?

김 아무개 직원 : 영장을….

검 : 본 적 없다고 답변해서 묻는다.

김 아무개 직원 : 기억이 안 난다.

3월18일 김 아무개 직원에 대한 검찰 신문

이날도 이범균 판사는 또 다른 김 아무개 직원 역시 피의자 신분인 점을 감안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재판을 시작했다.

검 : 증인은 안보5팀에 배속되기 전에 트위터 활동을 한 적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기억이 안 난다.

판 : 자, 그래도 안보5팀에서 트위터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 전에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별게 아닌 질문인 거 같은데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김 아무개 직원 : 특별히 제가 이것에 관심이 없어서….

검 : 안보5팀 부임하면서 트위터 외근 활동 시작했죠? 커피숍 다니면서 글 쓰는 활동을 했죠? 대답을 해주세요.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김 아무개 직원 : 30여 년 공직 생활을 했지만 검사님만 보면 떨려가지고, 사지가 떨려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그때 그러지 않았나. 저보고, 댓글이나 다는 늙은이가 왔다고.

검 : 질문에 답해주고 나중에 하고 싶은 말은….

김 아무개 직원 : 쳐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니까….

검 :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매일 오전 10시께 원 내부망을 통해 전자우편으로 이슈 및 논지를 전달받았다고 진술한 적 있죠?

김 아무개 직원 : 그렇게….

검 : 그렇게 진술한 기억이 나요? 검찰 1회 조사에서 증인은 지시 전달 방식에 대해 ‘매일 사무실로 출근해서 아침에 자기 컴퓨터는 지문을 인식해 본인만이 켤 수 있게 하는 내부망이고, 전자우편을 통해 전달받는 이슈 및 논지를 확인한다. 보통 10시쯤 1팀 담당 직원이 저희 팀원들에게 전송해준다. 제가 안보사업 1팀 근무할 때는 이슈 및 논지로 전달되는 건 없었는데 구두로 했다. 옮겨와서 이슈 및 논지를 전달받았다’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 이렇게 진술한 건 사실이죠?

김 아무개 직원 : 쭉 보니깐,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으니 그렇게 적은 거 같은데, 내 기억력이나 상식으로는 이렇게 자세히 한다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당시 완전 정신이 혼미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했다는 건 도저히….

검 : 증인이 사용한 계정 ‘태산4’를 검사가 어떻게 그것만은 기억하냐고 물어보니, ‘내가 계급 정년으로 나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묵묵히 일하는데, <뉴스타파>에서 처음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계정이라고 보도가 되었고, 내가 사용한 계정이 많이 언급되어서 착잡한 마음이다. 진급도 안 시켜주더니 말년에 이런 일로 문제가 되어 돌아가신 어머니도 생각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라고 진술했죠?

김 아무개 직원 : 그렇게 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 안 하는 걸로 하겠다.

검 : 외근을 했다는데 주로 어떤 장소인가?

김 아무개 직원 : 딱히 기억나는 건…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유랑자처럼 그냥 아무 데나 돌아다녔다.

검 : 증인은 2012년 9월3일 20시41분에 ‘안철수 참 찌질하네요. 결혼 1년 만에 딱지 사서 아파트 입주했는데 집 없는 사람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니, 참 쿨하지 못하네요’라고 태산4 계정으로 트윗 글을 게재한 적 있나? 증인이 검찰에서 이 글을 썼다고 인정해서 확인하는 취지다.

김 아무개 직원 : 내가 누구한테 (싫은) 소리한 적 없이 살아온 사람인데 저런 걸 썼다는 게 이해할 수도 없지만, 솔직히 썼는지 기억도 안 나고 진술을 안 하겠다.

검 : 그 점에 대해서 증인은 ‘내가 작성한 게 맞다. 이슈와 논지에 따라 보수 글 확산, 안철수 전세 관련 비판했다. 내가 어렵게 집을 마련했는데 저렇게 말한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라는 소회를 진술했다. 증인은 검사가 일부 내용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가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려운 거다. 본인이 말한 내용 그대로 아닌가?

김 아무개 직원 :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다. 그 당시에 김 검사님께서 조사를 두 번이나 했는데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지만, 나름 진술을 이끌어내려고 압박이랄까 상당히 느끼게 했다. 뭐라도 이야기를 안 하면 크게 다치는 게 있을 것 같은 데다, 아침에 키 크고 덩치 큰 윤 팀장님(윤석열 팀장)께서 오셔서 “니네 말이야, 무조건 진술을 해야지 니네가 살 수 있다”라고 해서 정신적으로 아노미 상태가 되었다. 검사님도 막 말씀하시고, 윤 팀장님도 오셔서 뭐라고 하고 가시니깐, 여기 계신 팀장님(박형철 팀장)께서도 웃으시긴 하지만 되게 막 마음속으로 힘들게 하시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내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혼은 다른 데 가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김 아무개 증인에 대한 변호인 신문

변 : 증인은 체포되어 검찰에서 조사받기 전에 국정원장에게 진술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그때 뭐, 워낙 가족들 보는 앞에서 체포되어서 알지도 못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변 : 증인의 2회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비밀이기는 합니다만’이라고 전제를 하면서도 증인 조직에 대해 상당히 소상히 진술했다. 직무상 비밀에 대해 진술하면서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

김 아무개 직원 : 아까 검사님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그 상황에서 뭐가 법에 위반되는지, 업무 내규에 위반되는지 상세하게 생각할, 정신적으로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여서 그런 걸 생각할 뭐가 없었다.

변 : 증인은 파트장이든 팀장이든 상급자로부터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명시해서 반대 활동을 하라고 지시받은 적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그런 적 없다.

판 : 증인은 아까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고 나서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내가 진술한 대로 작성되었는지 읽어보고 확인하고 서명 날인했다고 하는데, 지금 이 법정에서 하는 말을 보면 도저히 내가 그런 말을 했을 거 같지 않다고 말한다. 변호인까지 입회한 상태에서 읽어보고 서명 날인했는데, 도저히 내가 말한 거 같지 않다고 한 부분이 있을 거 같았으면서도 이의 제기하지 않고 서명한 이유가 뭔가. 당시에는 내가 진술한 게 맞다고 판단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김 아무개 직원 : 재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내가 30여 년간 처자식 호의호식 못 시켜주고 나라 위해서 일하다 자식들 보는 앞에서 체포되었다. 그 순간에 내가 쌓아왔던 게 다 무너졌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변호사님께서 오셨지만 그건 그냥 내가 아니라 딴 데 영혼이 가서 한 거고, 그날 이후로 나란 인간의 존재 이유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처자식 보기도 그렇고, 지금 큰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살면서 모든 걸 다 그냥 털어버리고 싶은 그런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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