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균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무죄, 국정원법 유죄.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그들은 어떻게 무죄를 만들었나

1년3개월여 만에 내려진 1심 선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웃었다.
“1심 판결은 수사 방해, 검찰총장 찍어내기, 수사팀 공중분해,
짜깁기 판결 등 무죄 만들기 흐름이 총체적으로 진행된 결과다.”
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고제규 기자, 김은지 기자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는 판결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개입을 했지만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압축한 평가다.

2013년 6월14일 검찰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전 원장을 기소하며 시작된 1심 재판의 선고가 1년3개월여 만에 내려졌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형식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지만, 내용적으로는 완패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등 상급심이 남아 있지만, 검찰 수뇌부는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판결 뒤 으레 나오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브리핑 대신, ‘판결문을 정밀 검토하고 항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만큼 원세훈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검찰마저 부담스러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연결된 ‘뇌관’이다. 1997년 안기부 북풍공작 사건 이후 15년 만에 드러나는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인데, 1997년 북풍공작 사건은 수사 당시 정권을 쥔 김대중 정부가 피해자였지만, 2012년 댓글공작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수혜자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선거법 혐의에 대한 ‘뇌관’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보통 ‘윗선’의 이런 작업은 보이지 않는 손이 은밀하게 작용하는데, 이번 사건은 맨얼굴을 드러냈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검찰 관계자는 “1심 판결은 수사 방해, 검찰총장 찍어내기, 수사팀 공중분해, 짜깁기 판결 등 무죄 만들기 흐름이 총체적으로 진행된 결과다”라고 말했다.

증거 배척된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

검찰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재판에서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직감한 것은 지난 6월30일 재판부가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의 증거능력을 배척하면서다.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 소속 김 아무개 직원의 이메일에 첨부된 이 파일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X파일’이었다.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직원들이 포털 사이트 게시 글을 대량 삭제해 애를 먹었다. 겨우 찾아낸 것이 게시글 1977개와 1711회에 이르는 찬반 클릭이었다. 수사팀이 내심 쥐고 있던 회심의 카드가 바로 트위터였다. 특별수사팀은 수사 초기부터 트위터 계정 추적에 나섰다. 지난해 5월 빅데이터 업체로부터 임의제출 받은 트위터 정보를 활용하며 강제수사에 나섰고 10월10일 안보5팀(트위터팀) 김 아무개 직원이 자기 메일에 첨부한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확보했다. 이 파일에는 트위터 팀 소속 국정원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와 269개 트위터 계정, 비밀번호, 활동 일시, 장소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검찰이 5개월 동안 찾아 헤맨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이처럼 트위터 여론조작 수사의 출발점이었던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재판부는 막판에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 파일에 담긴 트위터 계정을 ‘진술 증거’로 보았다. 김 아무개 직원이 본인이 작성했다고 인정하는 진술을 해야 인정되는 증거로 본 것이다. 자기 계정 메일로 자신한테 쓴 메일에 첨부된 파일이지만, 재판부는 본인이 썼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다며 그 문서에 담긴 기초 계정 269개뿐 아니라, 여기서 파생된 계정을 모두 증거에서 배척했다.

대신 재판부는 법정에 나온 국정원 직원들이 자기들이 사용한 계정이라고 인정한 175개 트위터 계정과, 이 계정에 담긴 11만3621회 트위터 내용만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때 아마 윤석열 팀장이 법정에 있었다면, 현장에서 재판장과 변호인의 논리를 반박하며 세게 붙었을 것이다. 당시 수사팀처럼 논리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팀장이 배제된 당시 수사팀은 법정에서 별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7월13일 결심공판에서야 검찰 특별수사팀은 “(증거 배제는) 법리상 수긍할 수 없다. 이미 증거 조작까지 이루어진 상황에서 증거 판단을 번복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시큐리티 텍스트 파일을 김 아무개 직원이 아닌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었던 성매매 고객 정보 기록이 담긴 디지털 문서를 직접 증거로 본 대법원 판례와 상충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버스가 떠난 뒤였다.

통상 선고 재판에 공판 검사만 나오는데, 이날 은 박형철·김성훈·이복현 검사도 검사석에 앉아 판결을 들었다. ⓒ서혜주
9월11일 오후 1시간가량 판결문을 들은 원세훈 전 원장은 재판장의 선고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혜주

재판부는 증거 채택뿐 아니라 법리와 양형 판단에서 들쑥날쑥한 잣대를 들이대 논리적인 충돌이 발생했다는 비판을 샀다. 재판부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모 관계를 지적할 때는 ‘정치개입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 강조 말씀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정 홍보를 강조하며 반복 지시한 점에 비추어보더라도 (정치개입 금지) 발언은 일탈행위(정치개입)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일종의 알리바이로 본 셈이다. 그런데 선거법 위반 혐의를 다투면서는 “선거 종료 시까지 불필요하게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기 바람(2012년 11월23일)” 등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서 알리바이용으로 본 발언을, 선거개입을 하지 말라는 논거로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내렸다.

반면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 가운데,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 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든 정권을 잡으라 그러고(2012년 2월17일)” 등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에 대해서는, 대선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바라는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발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2012년 2월 트위터팀을 만들 것을 지시했고, 그 뒤 트위터팀이 안철수·문재인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트위터를 대량으로 올렸다. 원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운영되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이것이 가장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재판부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상여금 10만원 지급반대, 은행장 16억 연봉 찬성, 원조 딱지, 다운계약서, 논문표절, 군복무 위수지역 이탈, 또 뭐가 나오려나 찰스, 진실이란 어린애들 모아놓고 야부리 깔 때만 적용되는 찰스의 진실’ 등 그나마 증거로 인정한 트위터 11만여 건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판단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없었다는 점만 들어 무죄판결을 내려버렸다.

선거법은 무죄로 판단했더라도 정치개입이 입증된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양형도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1억7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와 관련한 1심 재판도 맡아 징역 2년을 선고한 장본인이다. 이 부장판사는 이번에 ‘국민의 건전한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해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를 반대 비판하는 것은 자유주민주주의 원칙상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라고 판단하면서도 정작 형량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개인 비리 사건과 국정원 심리전단 70여 명이 동원된 정치개입 사건의 경중을 따져보았을 때, 이 부장판사의 저울추는 민주주의 훼손을 더 가볍게 본 셈이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을 두고 청와대 눈치보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난해 재판 진행 중에 박 대통령이 1심 결과를 지켜보자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느냐. 재판을 맡은 판사라면 당연히 부담이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1심 판결이 나오면 모를까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지금 사과하는 건 맞지 않다”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법조계에서는 선고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말이 돌았다. 게다가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사석에서 공공연히 말하고 다녀 법조 기자들 사이에 알려질 정도였다. 이때 무죄 소신을 밝힌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임명한 황찬현 현 감사원장이다.

이렇게 사법부에 대해서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인사 발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한 청와대가, 특별수사팀에 대해서는 채찍을 동원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가 그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고용복지수석실, 교육문화수석실 등이 동원되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 아무개군의 개인정보를 확인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수사를 맡은 검찰은 이들 대부분을 정상적인 감찰 활동에 해당한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배후는 밝히지 못한 채,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전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 송 아무개 국정원 정보관만 불구속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함께 찍어내기의 장본인으로 거론되었던 이중희 민정 비서관은 지난 8월 인사에서 주요 보직으로 꼽히는 부산지검 2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이렇게 ‘아군 적군’을 구분하는 ‘시그널 인사’를 하면서, 뇌관 제거 작업은 속도를 냈다. <조선일보>의 채 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 이후 처음 열린 재판 때 윤석열 팀장은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총장 찍어내기는 수사팀에게도 충격파였고 부담이었다. 특수부 검사와 공안 검사를 묶어서 한 팀을 만든 게 바로 채동욱 총장이었고, 채 총장은 국정원 수사에 있어서만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런 바람막이가 사라지면서, 특별수사팀은 외풍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수 사 도중 직무에서 배제되었다. ⓒ시사IN 이명익

청와대와 함께 또 다른 외풍의 진원지는 법무부였다. 1심 판결 결과만 보면 국정원 댓글 작업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최초 의견이 확인된 것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만들어진’ 판결이나 다름없다.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인사를 통해 특별수사팀을 공중분해시켰다. 청와대나 법무부가 검찰을 컨트롤하는 유력한 도구는 인사다. 지난 1월 박형철 부팀장을 대전 고검, 윤석열 전 팀장은 대구 고검 등 한직으로 발령냈다. 평검사인 단성한 검사도 대구지검으로, 김성훈 검사는 광주지검으로 인사를 냈다. 이복현 검사만 서울중앙지검에 남았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공소 유지를 담당하게 하는 일종의 힘빼기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특별수사팀을 압박하는 지휘계통에 있었던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대구서부지청장으로 전보되어 유일하게 문책성 인사를 피했다.

외압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검찰 특별수사팀도 공소 유지에 정교하지 못했다. 수사팀은 공소장을 세 번이나 변경했다. 지난해 10월 1차 공소장 변경은 윤석열 팀장이 총대를 메고 돌파하면서 5만5689건에 달하는 트위터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이 주도권을 잡았다. 또 11월 그룹 활동을 추가해 121만 건으로 늘린 2차 공소장 변경도 수사팀 검사들이 사표까지 걸고 버틴 끝에 관철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차 공소장 변경은 변호인의 역공에 말린 검찰이 방어적으로 트위터 수를 78만 건으로 축소하며 변경했다.

여기에는 국정원 대응팀과 검찰 디지털 수사관의 물밑싸움에서 검찰 수사팀이 밀린 원인도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든 사이버 여론조작 의혹을 산 트위터 숫자를 줄이기 위해 국정원 안에서 대응팀을 꾸렸다.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수십만 건의 트위터 계정에 대해 일일이 검증에 들어갔고 그 결과물이 변호인을 거쳐 재판부에 제출되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정원 직원이 쓰지 않은 트위터 계정이 확인되었고, 이범균 부장판사는 “하나가 허물어지면 전체 모든 계정이 허물어질 수 있다”라며 수차 경고를 하기도 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 관(아래)은 초기부터 국정원 댓글 공작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시사IN 조남진
2013년 9월16일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공작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는 ‘선고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말이 돌았다. ⓒ연합뉴스

법원 내부의 공개 비판 “법치가 무너졌다”

이 같은 국정원의 공세적인 대응 중심에는 남재준 전 원장이 있었다. 지난해 10월17일 안보5팀(트위터팀) 직원 3명이 수사팀에 붙잡혔다. 남 원장이 진술 거부를 지시했지만 이 가운데 2명이 비교적 상세한 진술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남 원장은 정보기관 직원답지 않다며 분개했다. 그 때문인지, 재판 초기 법정에 나온 안보3팀 소속 직원들은 말을 바꾸는 등 해명 진술이라도 했지만, 안보5팀 트위터 소속 국정원 직원들은 안면몰수 증언으로 일관했다. 진실을 다투는 법정에서도 이들은 ‘진술을 거부하겠다’가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원래 나쁘다’ 등의 김빼기 증언으로 일관한 것이다. 재판부가 “자기가 근무한 부서도 모르느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장판사는 그런 이들의 진술을 일부 채택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이번 판결을 두고 검찰이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부터 공개 비판이 나왔다. 동료 판사들의 판결문에 대해서는 일체 평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김동진 부장판사가 1심 선고 다음 날 “법치가 무너졌다”라는 글을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것이다. 판결문을 정독했다는 그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 1심 판결문(201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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