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균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무죄, 국정원법 유죄.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저 판사님 알고 보면 변호사인 걸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법정의 풍경은 좀 낯설다.
검사와 변호인이 아니라 검사와 판사 사이에 날선 공방이 자주 오간다.
판사는 1·2심을 거치면서 인정됐던 사실관계를 흔들며 다시 쟁점화시키고 있다.

김연희 기자

5월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김시철) 심리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11차 공판이 열렸다. 1심-항소심-대법원을 거친 뒤 열리고 있는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파기환송심 법정의 풍경은 좀 낯설다. 검사와 변호인이 아니라 검사와 판사 사이에서 날선 공방이 자주 오간다. 5월9일 열린 9차 공판에서 검찰은 “토끼몰이 한다”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며 재판부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고 있는 검사들은, 바로 윤석열 팀장이 이끌던 특별수사팀 소속이다. 3년째 이 사건을 파헤치며 공소 유지를 맡고 있다.

검사가 변론 중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언급하자, 김시철 부장판사는 말허리를 자르며 구체적으로 누구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질문했다. 재판장은 곧바로 검사가 준비한 변론에 나와 있지 않은 2009년 2월14일 국정원 직원의 게시글을 제시하며 표현의 자유 침해를 설명해보라고 요구했다. 검사를 압박하는 듯한 재판 진행에 검찰은 “교장 선생님한테 혼나는 기분이다. 뭘 이렇게까지 저희가 기소를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라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가정법에 근거해 피고인 측에 유리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는 국방부 관할 대북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설명한 <두산백과사전> 온라인 페이지를 준비해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웠다. 김 부장판사는 “국가정보원법 제3조 1항1호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국정원의 직무로 명시하고 있다. 대북방송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전파하는데 이 중 일부를 국정원에서 관장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국정원법 제3조 1항1호에 의해 대북방송이 적법하다면, 대공 사이버 활동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했다. 검사들은 질문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국정원이 대북방송을 하는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는데 가정을 하고 질문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단파 방송은 군에서 한다고 알고 있다. 지금 국정원이 하는지 안 하는지 확정도 못하는 걸 두고, 대북방송은 되는데 왜 사이버 활동은 안 되느냐고 묻는 건 공소 사실과 연관성이 적다”라고 반론했다.

국정원법 위반도 무죄로 판결할 가능성 있어

1심은 국정원 심리전단팀의 활동이 정치 관여라고는 인정했지만 선거 개입 여부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원 전 원장의 혐의 중 국가정보원법 위반은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선거법까지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해 원 전 원장을 법정 구속했다. 또 1심에서 배척했던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심리전단 직원 김 아무개씨의 이메일 첨부파일에서 나온 두 파일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과 사이버 활동 지침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무죄 여부를 심리하지 않은 채, 2심에서 인정했던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 능력만을 문제 삼았다. 이렇게 시작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원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부분까지 모든 쟁점을 다시 심리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11월13일 열린 5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김 부장판사는 “1·2심 판결을 유지할지, 수정할지를 하나하나 검토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유죄가 나온 국정원법 위반까지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읽혔다.

원 전 원장 주요 혐의는 심리전단 사이버 활동의 위법성과 함께 직원들과 ‘공모공동정범’ 관계가 성립돼야 인정된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트위터 글을 쓰거나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기능적 행위지배자로서 공모공동정범으로 보고 기소했다. 그런데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트위터 글이 이 조건에 해당하는지 하나하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5월30일 11차 공판에서 김 부장판사는 “실행행위가 개별적으로 인정돼야 공모공동정범에 있는 피고인들에게 유죄 판단이 가능하다. 이 전제가 안 되면 유죄 판단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2심을 거치면서 인정됐던 사실관계를 모두 뒤흔들겠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지난해 12월23일 있었던 대법원 판결을 들었다. 지난 대선 무렵 육군 장교가 트위터에 여당과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글을 써 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기소 취지와 달리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트위터 글이 포함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이 판결을 참조하기 위해 올해 초 두 달간 재판을 미루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12월23일 판결의 법리에 의하면 공소 사실에 기재된 실행행위자가 사이버 활동을 한 것에 대해 개별적으로 객관적 위법성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그 판결은 공직선거법 관련해서 새로운 입장을 제시한 게 아니다”라며 해당 판례를 끌어들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은 죄명이 공직선거법일 뿐 구조는 사기죄와 같다. 흔히 사기죄로 기소되는 보이스피싱 같은 경우 상급 지시자와 하위 실행자 사이에 여러 단계가 있어 특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일이 특정하지 않아도 유죄 판결이 난다”라며 개별적 입증 요구를 반박했다.
1·2심에서 심리가 끝난 부분이 다시 쟁점화되자 검사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제3자의 트위터 계정 사용 가능성을 놓고 공판마다 설전이 반복되고 있다. 4월25일 열린 8차 공판에서 김 부장판사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심리전단이 아닌 국정원 직원, 또 공소 사실에 기재된 심리전단 안보 3팀과 5팀 이외에 안보 2팀 직원까지 제3자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장 입장에서는 1·2심 판결이 맘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검사 측이 충분히 주장했고 누가 누구란 것을 다 석명했으니 1·2심에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됐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나. 재판장이 왜 그걸 궁금해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라고 항의했다. 원세훈 전 원장의 변호인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재판부의 견해를 두둔했다.

재판부가 원심에서 인정됐던 사실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나서면서, 검찰은 이미 입증한 사실을 두 번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원세훈 전 국장원장이 2013년 4월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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